책리뷰

조조 모예스 - 더 라스트 레터

sprachegarten 2020. 7. 24. 16:04

 

 

책소개 

 

1960년대, 성공한 사업가를 남편으로 두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는 제니퍼 스털링. 그런 제니퍼에게 신문기자 앤서니 오헤어는 연애편지를 보내며 절절한 사랑을 고백한다. 부자 남편을 둔 응석받이 여자로 살아가던 제니퍼는 앤서니와의 만남을 계기로 자신을 위한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고민 끝에 제니퍼가 남편을 떠나기로 결심한 날, 그녀는 뜻밖의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고 만다. 사고로부터 한 달 뒤, 제니퍼는 책장을 정리하다가 한 통의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한편, 2003년의 엘리 하워스는 이전을 앞둔 신문사 자료실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발견한다. 바로 그 옛날 앤서니 오헤어가 제니퍼 스털링에게 보냈던 편지였다. 자신 역시 유명 스릴러 작가 존과 불륜에 빠져 자신을 희생하기만 하는 사랑을 하고 있던 엘리는 있던 앤서니가 쓴 편지에 더욱 깊이 빠져든다. 이처럼 앤서니의 열정적인 편지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던 두 여자 모두를 진정한 사랑에 눈뜨게 하는데…….

 


우선 이야기의 가장 큰 구성은 

조조 모예스의 전작인 [허니문 인 파리]와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와 비슷한 구조로, 

과거 (1960년대)와 현재의 여자의 비슷한 상황이 대조된다. 

전작에서는 과거의 여인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현재의 여인은 사고로 남편을 잃은 상황이 비슷한데, 

이번 작품에서는 두 여자 모두 불륜이라는 상황에 빠진다는 점이 같다. 

다만 과거의 여자는 본인이 결혼생활 중인 여자이면서 이혼한 남성과 불륜을, 

현재의 여자는 미혼인 상태에서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른다. 

 

파트 1과 파트 2가 60년대의 여자 제니퍼 스털링의 이야기인데, 

정말 지금까지 조조 모예스의 여주인공들과 너무나도 달라서 정말 읽기가 힘들었다. 

그녀가 가정을 박차고 나왔어야 한다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그녀의 행동은 정말 예의가 아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지만 그 이유만으로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여하튼 왠지 모르게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듯한 느낌에 답답했다. 

 

그녀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된 건 

오히려 현대의 여자 엘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부터다. 

엘리는 자기가 사랑하는 일이 있고, 그로 인해 충분한 경제력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여자도 자신의 일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들으며 잘랐을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 제니퍼 스털링은 상류층이었으니

어렸을 때부터 20대 초반에 결혼하는 게 당연하고, 

삶에서 이외의 다른 진로라는 건 애초에 없다고 배워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의 모습이 좀 더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가정을 박차고 나온 뒤 그녀의 모습에서는 

그제서야 조조 조예스의 주인공다운 모습을 보이고 

그렇게 삶을 살아간다. 

 


 

다 읽고 리뷰를 찾아보니 불륜을 다루고 있다보니 불편해하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나 역시 불륜은 절대 반대이지만

읽으면서 작가가 불륜에 대해서 옹호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물론 제니퍼와 앤서니는 불륜이지만 서로 정말 사랑했기에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현대의 커플 엘리와 존의 관계를 볼 때, 특히 그로 인해 점점 피폐해지는 엘리에 대한 묘사를 보면

불륜의 폐해를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니퍼와 앤서니 커플도 불륜으로 인한 고통을 톡톡히 치루었다. 

제니퍼는 이전의 모든 관계로부터 단절당했으며, 

앤서니 역시 자녀와 함께 살지 못하는 이혼남으로써

아이를 남편에게 놓아주어야 하는 고통을 알기에 제니퍼에게 다시 다가가지 못했다. 

그들이 끝까지 만나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만나지 않음으로써 불륜에 대한 어느 정도의 댓가를 치루었다. 

어느 것도 불륜에 대한 완전한 댓가는 될 수 없기에. 


또한 작가는 두 시대의 불륜을 다룸으로써 

두 시대의 여성관, 결혼관, 사랑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준다. 

여성의 지위는 향상되었지만, 

결혼과 사랑의 지위는 바닥에 떨어졌다. 

 

제니퍼와 앤서니의 관계는 불륜이긴 하지만 서로에게 거짓이 없는, 진솔한 관계였다. 

불편하긴 해도 이 둘의 사랑의 감정은 진실했다. 

또한 다행이도 이 둘은 에로스에 휩쓸려서 자녀를 내팽개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엘리와 존의 관계는 진실하지 못하다. 

적어도 가정이 있는 존은 그저 기분전환용으로 만나는 것이지 절대로 사랑하는 게 아니다. 

이 시대에 사람들은 불륜에 익숙하고,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자녀를 포기하는 것에 대해 머뭇거림이 거의 없다. 

심지어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해서 없애버리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은가. 

남녀 간의 사랑도, 자녀에 대한 사랑도 사라지고 

그저 자신에 대한 사랑만 깊고도 깊다. 

 

이 책을 불륜이라도 진정한 사랑이라면 괜찮다는 증거로 사용하는 분은 없기를 바란다.  

오히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만이 바른 길이다. 

결혼 이후의 사랑에 대해서는 월터 트로비쉬 목사님의 말을 열렬히 지지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사랑할 사람을 고르지만, 

결혼한 후에는 결혼한 사람만 사랑해야 한다. 

 

 


편지라는 매개체 역시 이 소설에서 큰 역할을 담당한다. 

제니퍼와 앤서니가 사랑을 나누는 도구이면서 

40년 뒤 엘리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하는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사랑의 메신저가 편지가 이메일, 문자로 바뀌면서

그 메시지에 담긴 사랑도 더 빨라졌고, 가벼워졌다. 

 

마지막에 앤서니는 엘리에게 편지를 보내지 말고 직접 가서 만나라고 한다.

편지도, 문자도 진실한 사랑의 매개체가 될 수는 있지만, 

정말 그의 조언대로 눈을 맞추는 대화만큼 확실한 사랑의 증거는 없을 것이다. 

 

 

 

마음에 남은 구절들

 

 

 

엄청난 부자들에게는 어김없이 빈정대고 싶어지게하는 구석이 있었다. 앤서니는 저녁 초대에 가기 위해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마 반박당하는 일이 드문 사람 특유의 몸에 밴 확신 때문일 것이다. 더없이 평범한 견해조차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 특유의 거만한 태도.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중에서

 


 

 

글씨체도, 직선적으로 말하는 열정적인 표현들도 똑같았다. 단어들이 깊은 소리를 내는 것만 같았다. 거대한 종이 울리면 오랫동안 진동이 느껴지듯이, 제니퍼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들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중에서

 


 

이야기를 하는 그를 지켜보는 그녀의 시선이 좋았다. 그가 어떤 말을 해도 그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한 눈빛. 그가 무엇을 털어놓아도 나중에 불리한 증거로 이용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중에서

 


 

 

이본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걸 알아야 해요, 모린, 추파에도 종류가 있다는 거. 레지와 제니는 지금 굉장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둘 중 누구도 바람피울 생각은 없어요. 둘은 서로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어요, 맞아요. 하지만 숨길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사람이 가득한 방에서 그러고 있잖아요. 제니에게 조금이라도 진지한 감정이 있다면 래리 앞에서 그러겠어요?" 이본 자신에게도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리는 말이었다. "모린도 나이를 좀 더 먹으면 알게 될 거예요. 재미삼아 말로 티격태격하는 게 삶의 일부라는 걸." 이본이 땅콩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건 긴 세월을 한 남자와 살아야 하는 현실에서 크나큰 위안이 되는 일 중에 하나예요."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The Last Letter)]

 


 

하지만 이것이 바로 분쟁 보도의 저주임을 앤서니뿐 아니라 돈도 알았다. 그 일은 선악의 구분이 명확하고,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하고, 유머와 절박감과 우정으로 가득했다.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하게 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는 더 이상 '평범한'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걸 좋아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The Last Letter)]

 


 

제니퍼는 고요한 집이 있는 광장을 지나쳤다. 그녀의 모든 말과 행동이 한 남자의 비판을 불러일으키던 곳이었다. 그녀가 너무나 불행하게 만들어서 그녀를 끊임없이 벌주는 것이 삶의 유일한 방식이 된 남자. 그는 침묵과 집요한 모욕, 한여름에조차 떨게 만드는 분위기로 그녀를 벌주었다.
그런 삶에서 아이가 보호막이 될 수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였다. 그리고 지금 제니퍼가 하는 일이 주변 사람들 눈에는 수치스러운 일로 보일지라도, 딸아이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줄 수 있었다. 자신을 마비시키지 않고도 살아가는 방식. 평생 자신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사죄하며 살지 않아도 되는 방식.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The Last Letter)]

 


 

점점 가늘어지다 남자의 심장을 찌르고도 남을 정도로 끝이 뾰족해지는 검은 속눈썹.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The Last Letter)]

 

 


제니퍼는 고요한 집이 있는 광장을 지나쳤다. 그녀의 모든 말과 행동이 한 남자의 비판을 불러일으키던 곳이었다. 그녀가 너무나 불행하게 만들어서 그녀를 끊임없이 벌주는 것이 삶의 유일한 방식이 된 남자. 그는 침묵과 집요한 모욕, 한여름에조차 떨게 만드는 분위기로 그녀를 벌주었다.
그런 삶에서 아이가 보호막이 될 수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였다. 그리고 지금 제니퍼가 하는 일이 주변 사람들 눈에는 수치스러운 일로 보일지라도, 딸아이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줄 수 있었다. 자신을 마비시키지 않고도 살아가는 방식. 평생 자신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사죄하며 살지 않아도 되는 방식.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The Last Letter)]

 

 


 

엘리는 편지의 글귀들을 읽고 또 읽었다. 이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글귀들은 열정과 힘을 품고 있었다. "당신이 내 마음, 내 희망을 쥐고 있다는 걸 알아줘요." 같은 말을 들을 수도 있는데, 뭐 하러 "그렇게 되면 생활수준이 낮아질 거라는 점을 지적했는데도" 따위의 아는 체하는 말을 참아야 하는가? 엘리는 그 여자 친구가 저 남자에게서 벗어나는 행운을 누렸기를 바랐다.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The Last Letter)]

 

 


 

그 시대에는 드문 일이 아니었거든요. 남편은 모든 사교 행사에 정부를 데려갔죠." 부인이 웃으면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정말 놀라운 이중 잣대가 존재하던 시대였어요."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The Last Letter)]

 

 


 

그들은 의미 있는 관계를 나누었다고 엘리는 생각했다. 그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 앞에 자신을 활짝 열어 보였다. 그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보호하고자 애썼다. 심지어 그녀를 그녀 자신에게서 보호하려고 했다. 그는 제니퍼와 함께할 수 없게 되자 지구 반대편으로 물러나며 자신을 희생했다. 그리고 제니퍼는 40년간이나 그를 애도했다.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The Last Letter)]

 

 


 

"난 두려워요……."
"뭐가요?"
그녀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낮아졌다. "날 그 정도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을까 봐요."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The Last Letter)]

 

 


 

앤서니는 슬픈 얼굴을 한 조용한 아들,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는 죄책감을 떠올렸고, 또 다른 가족에게 그런 짐을 지운다면 그들이 얻게 될 행복 아래로는 보이지 않는 전류처럼 깊은 슬픔이 흐르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그는 한 가정을 파괴했다. 또 한 가정을 파괴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The Last Letter)]

 

 


 

엘리는 무슨 현대적인 여성인 양 행동했지. 요구하면 언제든 섹스하고, 일을 제일 우선으로 하고. 당신은." 그가 적당한 단어를 찾아 더듬거렸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어."
그 단어가 이상하게 가슴을 찔렀다. "난 자신을 보호한 거였어요."
"그럼 난 엘리 속으로 들어가서 그걸 알아내야 하고? 그런 게 진실한 관곈가?" 존은 정말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The Last Letter)]

 

 


 

 

당신이 여전히 그 안에 있다면, 당신이 예전에 알던 여자의 모습에 내가 덧칠할 수 있게 해준다면, 나도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하겠어요.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The Last Letter)]

 

이 모든 일에서 내게 위안이 되었던 한 가지는 날 사랑했던 남자가, 내게서 최고의 면만을 보았던 남자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이에요.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The Last Letter)]

 


 

제니퍼는 승리와 재앙 사이를 걷잡을 수 없이 오갔고, 엘리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존의 말을 끝없이 분석하던 자신을 떠올렸다. 너무나 명백하게 잘못된 것을 옳은 것으로 바꾸려던 필사적인 몸부림. 그 의미가 무엇인지 오직 추측만이 가능한 말들에서 결과를, 감정을 끌어내던 자신의 모습.
하지만 앤서니 오헤어는 다른 사람이었다.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The Last Letter)]

 

 


 

"나는 두 사람이 잘 해결해나가리라고 믿어요. 다만 정직하게 말하는 게 중요해요. 고통스러울 정도로 정직하게. 그리고 늘 원하는 답만 얻지는 못할 거예요. 지난주에 엘리가 돌려준 편지들을 다시 읽으며 떠올린 게 바로 그 점이었어요. 우린 게임 같은 건 하지 않았죠. 난 앤서니에게만큼 정직하게 나 자신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어요."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The Last Letter)]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면죄부란 없어요, 엘리. 어쩌면 죄책감이 생각보다 미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지도 몰라요. 열정이 타오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그게 불륜일 경우에는 당사자만 상처 입는 게 아니니까요. 나의 경우엔, 아직까지도 로런스에게 준 고통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요……. 당시에는 나 자신을 정당화했지만 이제는 그 일이…… 우리 모두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죠. 하지만…… 늘 가장 마음이 아픈 건 앤서니예요."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The Last Letter)]

 

 


저 밖의 어딘가에 자신을 이해하고 욕망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보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놀라운 선물이라는 사실을요. 우리는 비록 함께 있지 않지만, 당신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이 나에게 살아갈 힘을 준다는 걸 알아줘요.

조조 모예스 [더 라스트 레터 (The Last Letter)], 앤서니의 편지 중에서